나만 기억하는 시월드 이야기
역시나.. 역시나 제사 지내는 날이었다.
몇 년간의 불쾌함과 갈등이 쌓이고 누르고, 쌓이고 누르고 힘겨운 때이기도 했다.
눈치 보면서 야근 빠지고 힘들게 가서 1차 설거지 한바탕 마치고 소파에 잠시 앉아서..
급한 회사이메일 확인 중이었다.
2차 설거지는 남편의 동생이 했다. 그때까지도 남편은 나보다 더 일찍 퇴근하고도 일을 안 했다.
갑자기 어머니가 내 옆을 지나가면서 집안에 있는 인터넷 공유기가 문제가 있던 상황이었는데, 그걸 두고..
특유의 쏘아대는 말투로
"너 이거라도 해.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
ㅁㅊ...
이건 더 이상 참아줄 수가 없었다.
"제가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 네가 한 게 뭔가 있니?"
나는 방에 들어가서 그 순간마저도 더 이상 말대답하지 않으려고 혀를 누르면서 한숨을 쉬었고.
남편의 동생은 시어머니에게 가서 "엄마, 언니 왜 구박해, 설거지했잖아."
이 대화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남편은 거실 바닥에 엎드려서 방관했고, 아버님은 못 들은 체하시는 것 같았다.
이날은 도저히 눌러지지가 않아서 분이 안 풀리는 상태로 다시 주방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갔다.
"제가 뭐 더 하면 돼요? 할 게 많아요?"
"됐다."
나도 모르게 처음으로 감정조절이 안되고 혼잣말이 나왔다.
"도대체 뭘 얼마나 해야 된다는 건지.."
말하면서 방으로 돌아갔다.
그분의 속마음이 너무나 뚜렷하고 확실했다. '당연히 모든 것을 네가 해야 하는데 감히 퇴근하고 와서 설거지 한 번만 해?'
그렇게 어색하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있다가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꾸역꾸역 눈물을 참고 속으로 엄마아빠 생각이 가득했다.
엄마아빠가 너무 보고싶었고, 시어머니 때문에 이혼하고 싶어도 엄마아빠가 속상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 자신을 두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내 그릇이 그랬다..
진짜 대화는 며칠 뒤.. 저녁에 갑자기 전화가 왔다..
피로가 안 풀린 상태로 퇴근하자마자 전화를 넘겨받았더니 시어머니였다. 결국 1시간이 넘었던 통화의 내용은 이랬다.
시어머니의 시작과 주요내용..
"그날 말대답하는 그 태도가 뭐냐, 너무 속상해서 구석에서 울었다. 내가 했던 배려는 몰랐던 거냐. 어쩌고 저쩌고"
"그럼 저는 혼자 당연하게 설거지해야 하는 사람이고 ㅇㅇ이랑 ㅇㅇ는 가만히 쉬고 있는 게 맞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ㅇㅇ이한테 안 그래요"
"그럼! 사위랑 며느리랑 어떻게 같을 수가 있니."......
더 이상 목소리도 듣기 싫어서 핸드폰을 집어던지고 싶었는데 여기서 더 말대답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할 것만 같아서 다시 내 목구멍을 있는 힘껏 밀어 넣었다.
마지막에는 남편의 사촌동생까지 끌어들여 며느리인 나와 비교를 했다. 그 사촌동생은 당신과 피가 섞이지 않은 관계인데 그래도 이쁘다면서.
어릴 때부터 봐온 조카랑 다 커서 만난 지 몇 년 안 된 며느리랑 비교대상이야? '나도 나의 작은엄마, 큰엄마, 이모에게 이쁜 조카야....'
이미 상식밖으로 뛰쳐나온 발언이었다. 비교대상도 아닐뿐더러 비교자체가 미성숙한 태도라는 걸 정말 모르는것이다 이 분은..
누군가에게는 착한 엄마, 착한 큰엄마, 착한 아줌마일지언정 며느리에게는 그런 악마가 따로 없었다.
직접적인 대화로는 말이 절대 통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확인하고 난 뒤에는 그냥 내 귀를 닫았다.
확인이라도 해서 차라리 시원했다.
나름의 한바탕 이후 본인도 느낀 바가 있었는지 말을 곱게 시작해 주시는 변화가 몇 번 있었다. 그게 길게 가지는 못했지만....
왜냐.. 사람은 쉽게 변하는 동물이 아니니까...
이제 와서 보면 그렇게 대판 터놓고
"네가 맞네 내가 맞네" 하는 다투는 대화가 없었다면 여지없이 이혼을 선택했을 것 같다. 엄마아빠에게 아무리 죄송하더라도..
그래도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가족관계에서의 서로의 위치와 상태를 잘못 알고 있었고, 어느 정도로 시작점이 잘못되었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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